토스를 퇴사하며

지난 1월, 나는 토스를 퇴사했다. 2022년 6월부터 2026년 1월까지, 약 3년 반 동안 토스에서 일했다.
토스는 내게 단순한 회사가 아니었다. 한때는 꼭 가고 싶었던 꿈의 회사였고, 실제로 내 커리어와 일하는 방식을 가장 크게 바꿔준 곳이었다. 나는 그곳에서 가장 치열하게 일했고, 가장 크게 무너졌고, 가장 많이 성장했다.
그래서 퇴사는 가벼운 결정이 아니었다. 토스가 싫어서 떠난 것도 아니고, 더 좋은 조건을 찾아 쉽게 옮긴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토스가 내게 너무 좋은 회사였기 때문에 떠나는 일이 더 어려웠다. 여전히 함께 일하고 싶은 뛰어난 동료들이 있었고, 몰입할 수 있는 도전적인 일이 있었고, 내가 좋아하는 속도와 방식으로 일할 수 있는 환경과 업계 최고 수준의 복지도 있었다. 그 안에 머무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괜찮은 미래가 그려졌기 때문에, 떠나기로 결심하기까지 더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좋은 환경에 남아 있는 것과, 내가 다음으로 가야 할 방향을 선택하는 것은 결국 다른 문제였다. 토스에서 많이 성장했고 좋은 동료들과 의미 있는 성과를 만들어왔지만, 그 안에 계속 머무르는 동안 외면하며 미뤄뒀던 선택들도 있었다. 나는 어느 순간부터 그 선택들을 더 이상 회피하고 싶지 않았다.
이 글은 그런 고민 끝에 토스를 떠나기로 결정한 과정에 대한 기록이다. 동시에 내가 토스에서 어떤 시간을 보냈고, 왜 그 좋은 환경을 뒤로하고 다시 불확실한 선택을 하게 되었는지 돌아보는 글이기도 하다.
다만 이 글을 좋은 기억만 남긴 회고로 쓰고 싶지는 않았다. 당시에는 힘들었고, 부끄러웠고, 지금 돌아보면 서툴렀던 생각들도 함께 남기고 싶었다. 그런 부분까지 적어야 토스에서의 시간이 내게 어떤 의미였는지 더 정확히 돌아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입사의 순간보다 조금 앞에서 이야기를 시작해야 한다. 내가 왜 토스에 가고 싶었는지부터 돌아보려고 한다.
꿈의 직장 토스로
토스는 나의 두 번째 직장이다. 이전 직장이었던 마이다스아이티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사회로 나와야 했던 나에게 꽤 괜찮은 첫 직장이었다. 신입 시절 나는 개발자라는 일의 본질이 주어진 요구사항을 잘 구현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특히 FE 개발자로서 기술적인 영역에 관심이 많았다. jQuery를 사용하던 기존 팀 안에서 스터디를 리드하며 신규 프로젝트에 React와 SSR을 도입했고, 단위 테스트와 번들 최적화 같은 엔지니어링 업무에 몰두했다. 당시에는 그런 일들이 내 직무 전문성을 높이는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FE 엔지니어링 작업을 하면서 개선되는 수치를 보는 과정은 개발자로서 만족스럽고 성취감이 있었다. 줄어든 페이지 번들 사이즈, 빨라진 웹 페이지 로딩 속도, 개선되어가는 레거시 코드 모두 분명히 의미 있는 엔지니어링 성과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상한 허무함이 남았다.
내가 하는 일들이 실제로 사용자에게 가치를 전달하는지 확신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더 좋은 기술, 더 깔끔한 구조, 더 빠른 성능을 쫒고 있었지만, 어느 순간 그것들이 사용자에게 전달되는 가치보다 내 머릿속의 ‘뛰어난 개발자’라는 환상을 투영하기 위한 수단에 가까운 것은 아닌지 의심하게 됐다.
그때 나는 내 업의 본질이 엔지니어링 그 자체에만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결국 중요한 것은 좋은 코드를 작성하는 것이 아니라, 그 코드로 만들어진 제품이 사용자에게 실제 가치를 전달하는 일이었다. 나는 내가 만든 서비스가 사용자의 삶을 조금이라도 더 낫게 만들기를 바랐다. 보기 좋은 허울이 아니라, 사람들이 실제로 필요로 하고 계속 사용하게 되는 진짜 가치를 만들고 싶었다.
하지만 당시의 환경에서는 그런 제품적 성공 경험을 얻기 어렵다고 느꼈다. 고객이 전혀 없는 신규 제품 MVP를 만들면서도 제품의 핵심 가치를 검증하기보다는 제품을 왜 만들고 있는지 설명하는 페이지를 만드는 데 시간을 쓰는 모습에 실망했고, 이후로도 반복되는 전략적 실패를 보며, 이곳에서는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사용자의 문제를 풀고 제품의 성장을 만들어내기 어렵겠다고 판단했다.
이때부터 나는 '스타트업'이라는 단어에 강하게 끌리기 시작했다. 열정 있는 작은 팀이 문제를 정의하고, 빠르게 실행하고, 사용자가 실제로 반응하는 제품을 만들어나가는 이미지가 계속 머릿속에 맴돌았다. 토스는 그 상상에 가장 가까운 회사처럼 보였다. PO, PD, DA, 엔지니어가 하나의 목적 조직으로 모여 작은 스타트업처럼 일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여기는 내가 꼭 가야 할 곳이라고 느꼈다. 이름 있는 개발자들이 많다는 점도 매력적이었고, 가장 보수적인 금융 도메인에서 가장 빠르게 움직이며 단순한 UI/UX로 시장을 바꿔나가는 모습도 멋있었다.
운이 좋게도 내가 이직을 준비하던 2022년 초중반의 한국은 지금과 다르게 코로나 직후 개발자 채용이 활발하던 시기였고, 나는 그 시류에 편승해 토스에 합류할 수 있었다.
입사 그리고 하드 랜딩
토스에 처음 합류했을 때, 내게는 너무 많은 것이 한꺼번에 바뀌었다. 이전 회사에서는 2주 단위 스프린트에 맞춰 개발하고 배포하는 방식이 익숙했다. 하지만 토스에서는 하루에도 여러 번 배포하는 ASAP 프로세스가 당연했다. 내게 기대되는 역할도 완전히 달라졌다. 기획자와 디자이너가 만든 스펙을 잘 구현하는 개발자가 아니라, 팀이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를 이해하고, 가설을 가장 빠르게 검증할 수 있도록 스펙을 분해하고 다시 설계할 수 있는 능동적인 메이커가 되어야 했다.
너무 급격한 변화로 적응에 어려움을 겪었다. 반복적으로 부정적인 피드백을 받았고, 팀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걸림돌이 되고 있는 현실이 고통스러웠다. 모든 게 완벽한 팀에 나만 문제투성이인 것 같았다. 사실은 내가 토스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었는데, 운 좋게 잘못 들어오게된 건 아닐까. 그런 자기의심으로 가득한 시간을 보냈다.
당연하지만 아직 나에게는 이 두 가지를 한 번에 잘할 능력이 없다. 그렇지만, 팀원들이 나에게서 잘하는 것을 바랄 때 내 능력이 사실은 보잘 것 없다는 게 들통날까 두렵다.
이직 2주 차 일기에서..
혼자서 잘 해내야 한다는 불안감에 괴로웠지만, 잡은 기회를 이렇게 허무하게 놓치고 싶지 않았다. 사내의 다른 조직으로 도망치더라도 결국 같은 문제가 반복될 것 같았다. 나는 어떻게든 첫 사일로에서 턴어라운드를 만들어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시작은 자기 객관화였다.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새로운 방법으로 일한다는 것은 당연히 낯설고 우여곡절을 많이 겪을 수 밖에 없다. 성과를 내야한다는 부담감에 나를 더 극한으로 몰아넣고 더 비난하고 혐오하다가 견딜 수 없어 도망치기도 했다. 나를 그 곳에서 구출시켜준 것은 현실에 대한 자각이었다.
나는 더 이상 한 회사에서 2년 넘게 일하면서 주변 동료에게 신뢰를 두텁게 쌓은 사람이 아니었다. ... 다만, 거기서 멈추는 게 아니라 나의 현재 부족함을 인지하고 받아들이고, 앞으로 나아갈 방법을 찾으면 된다.
처음엔 어렵고 힘든게 당연한 것이다. 내가 바라보는 목표가 높기에 나에게 기대하는 게 큰 것은 당연한 것이다. 다만, 이 레이스는 마라톤이라는 것을 기억하자. 결승 지점까지 한참 남았다.
이직 3달 차 일기에서..
나는 더 이상 이전 회사에서 2년 넘게 일하며 신뢰를 쌓아둔 사람이 아니었다. 내가 수정하는 코드는 내가 처음부터 설계하고 유지보수하던 코드가 아니었고, 일정 추산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이전에 일하던 방식을 유지하면서는 토스에서 1인분을 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했다.
부족함을 인정하는 일은 고통스러웠다. 하지만 인정하고 나니 바꿀 수 있는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모르면 묻고, 막히면 공유하고, 일정이 틀렸다면 빨리 알리고, 혼자서 해결할 수 없는 일은 주저 없이 동료들의 도움을 구하며 일해야 했다.
운이 좋게도 내 온보딩을 돕기 위해 시니어 FE 동료가 같은 사일로에 배치되었다. 그에게 많이 의지했고, 많은 것을 배웠다. 동료들의 피드백을 체화하려고 애썼고, 새로운 조직에 맞는 업무 방식을 익히기 위해 정말 많은 노력을 했다. 그렇게 입사 4개월 차가 되었을 때, 나는 사일로 동료들과의 월간 미팅에서 비로소 나 자신을 “주도적으로 일하고 공유하는 FE 엔지니어”라고 평가할 수 있었다.
오늘 있었던 사일로 먼슬리 리뷰에서 동료들에게 긍정적인 피드백을 받았다. 그리고 나 또한 나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
개인적으로 내가 일하는 방식이 정말 많이 바뀌었다고 느끼고, 개선됐다고 느낀다.내 셀프리뷰를 이렇게 긍정적인 바이브로 웃으면서 많이 좋아졌다고 말할 수 있을 줄이야.
...
내가 이렇게 발전할 수 있었던 이유는 나를 믿고 기다려주고 계속해서 피드백해준 사일로 동료들과 내가 잘 랜딩할 수 있도록 서포트해준 XX님(시니어 FE 개발자님) 덕분이다. 앞으로도 화이팅하자.
이직 4달 차 일기에서…
토스에서의 첫 몇 달은 인생에서 손꼽을 만큼 정말 힘든 시기였다.
하지만 돌아보면, 그 시간 덕분에 나는 어떤 환경에 놓이더라도 결국 적응하고 다시 해낼 수 있다는 확신을 얻었다.
적응 그 이후
거칠었던 온보딩이 끝나고, 나는 토스라는 조직에 꽤나 잘 적응했다. 여러 사일로와 길드를 거치며 참 많은 제품을 만들었다. 하나하나 자세히 풀어 쓰기에는 너무 많지만, 돌아보면 모두 그 시기마다 나름의 목표와 맥락이 분명했던 일들이었다.
토스의 핵심 수익 서비스였던 카드 발급 서비스
송금 유저를 늘리고 새로운 송금 씬을 만들기 위해 시작했던 익명 송금 SNS
토스아이디크리스마스를 맞아 불우이웃 기부 모금을 위해 만든 이벤트
나만의 눈사람 만들기인터넷 가입할 때 마다 불리한 위치에 있던 고객들을 돕고, 통신 시장에 새로운 선택지를 만들고자 시작했던
인터넷 혜택 비교와토스모바일리워드 없이 사주 컨텐츠와 귀여운 일주 동물로 리텐션을 만들어보자는 목표로 시작했던
오늘의 운세느슨해진 금융앱 씬에 MAU 초격차를 만들기 위해 미친 듯이 찍어내면서 만들었던
동그라미 그리고 포인트받기,한글날 다른 글자 찾기,생필품 100원에 사기그리고 수 많은 바이럴 제품들..토스 쇼핑의 가격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가격 지도를 만들고자 시작했던
최저가 찾고 포인트 받기
돌아보면 지난 3년 반 동안 토스에서 여러 동료들과 함께 정말 많은 일을 했다. 이전 직장에서 막연하게 가지고 있던 제품에 대한 갈증도 토스에서 조금씩 해소됐다. 내 역할을 FE 개발에만 제한하지 않고, 목표를 이루기 위해 기획, 전략, 디자인, 데이터 분석까지 여러 방면에서 직접 기여해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역할의 경계를 정해두지 않고 일하는 과정은 내게 무척 재미있었다.
개발자로서도 여러 도전이 있었다. 6개월 동안 바이럴 제품 12개를 만들며 토스에서 가장 빠르게 바이럴 제품을 만들어내는 프론트엔드 개발자가 되기도 했고, 웹에서는 구현하기 어려운 네이티브 기능을 위해 React Native로 개발하면서 웹 플랫폼의 제약 바깥에 있는 기술의 가능성도 경험했다. 또 입사 초기에는 시니어 개발자의 도움을 받으며 겨우 적응할 수 있었던 신규 입사자였지만, 어느새 나 역시 새로운 동료의 온보딩을 돕는 메이트가 되어 있었다.
이런 경험을 지나오며 내 관심사는 언제나 '우리 팀의 성공에 더 크게 기여하는 것'에 있었다. 단순히 내가 맡은 일을 잘 끝내는 것보다, 팀이 진짜 성공하는 데 더 큰 변수가 되고 싶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PO라는 역할에도 관심을 갖게 됐다.
더 큰 임팩트에 대한 욕망
나는 제품과 조직의 성공에 더 큰 영향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FE 개발자로서도 충분히 바빴고, 나름대로 잘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순간들이 있었다. 하지만 마음 한편에는 계속 다른 갈증이 남아 있었다. 더 큰 임팩트를 만들기 위해 내가 만든 기능만이 아니라, 팀의 방향과 전략, 문제 정의와 의사결정에 더 깊게 관여하고 싶었다.
그 마음은 자연스럽게 PO라는 역할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막상 도전하려고 하니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막막했다. 지금까지 쌓아온 FE 역량과 PO에게 요구되는 역량은 꽤 다르게 느껴졌고, 주변의 뛰어난 PO들을 볼수록 나는 아직 준비된 것이 아무것도 없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같은 사일로의 PO에게 따로 시간을 내어 데이터 보는 방법을 배워보기도 했지만, 데이터를 해석하고, 팀을 이끌고, 불확실한 상황에서 의사결정을 내리는 일은 여전히 내게 멀고 어려운 일처럼 보였다. 그 격차에 압도되어, 나는 한동안 쉽게 움직이지 못했다.
그래서 PO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든지도 거의 1년이 됐음에도 어떠한 실질적 시도조차 하지 못했던 것 같다. 물론 그 이유에는 두려움도 포함되어 있다. 내가 지금까지 쌓아온 FE적인 역량과 내가 "해보고 싶은" PO적인 역량은 완전히 다른 것이었기 때문에, 그 격차가 너무 크다는 것을 알기에 두려웠다. 특히 개발자에서 PO되기 문서에는 내가 알지 못하는 것 투성이였고, 그것에 압도되어 시작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던 까닭이 제일 컸던 것 같다.
...
솔직히 PO가 내가 인생에서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이라는 확신은 없다. 또 어느 정도는 내가 이제 사일로 FE 일을 하는 것에 흥미를 잃고나서 새로운 도전을 할만한 무언가를 찾고자하는 것도 없지 않아 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현시점 내가 제일 해보고 싶은 일이라는 것은 어느 정도 확실한 것 같다.
인생은 짧고, 내가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길 바란다.
2024-09 메모에서..
나는 제품/조직의 성공의 가장 큰 변수가 되고 싶다.
내가 조직의 성공에 가장 큰 변수로 작용하려면 조직의 전략을 세우고 의사결정을 내리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데, 이게 내가 생각했을 때 PO다.
2024-09 동료와 커피챗 이후 메모에서..
토스 1년 차 이후 내가 작성했던 글들을 보면, 그 시절 내가 반복해서 느꼈던 결핍과 욕망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더 큰 성과를 만드는 데 기여하고 싶다는 마음. PO에 도전해보고 싶은 욕망. 하지만 FE로서 지금도 충분히 바쁘고 잘하고 있다고 스스로를 설득하며 현상 유지하고 싶은 마음. 그 둘이 계속 충돌했다. 결국 나는 할까 말까 망설이며 제자리걸음을 반복하다가, 어느 순간 스스로 PO가 되겠다는 결심도 어영부영 놓아버렸다.
솔직하게 돌아보면, 나는 바쁨 뒤에 숨어 있었다. 토스의 빠른 이터레이션 주기에 맞춰 필요하다면 새벽까지 일했고, 나 역시 그렇게 열심히 일하는 것이 나와 동료, 회사에 기여하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일에 쫓기며 집과 회사를 오가는 바쁜 삶 속에서, 내가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는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지 않으려 했던 것 같기도 하다.
팀에서 성과를 만들고 있다는 '현상'을 근거로 스스로를 설득하고 싶었다. 내가 정말 성장하고 있는지는 확신할 수 없었지만, 토스는 계속 성장하고 있었다. MAU도, 매출도, 회사의 목표도 계속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어쩌면 나는 회사의 성장에 기대어 정작 나의 성장을 외면하고 싶었던 것 같다.
여정 속에서 기억에 남는 것
토스에서의 여정을 돌아보면 오래 기억하고 싶은 것들이 많다. 힘든 순간도 많았지만, 그만큼 이곳에서만 보고 배울 수 있었던 장면들도 많았다. 시간이 지나도 오래 남는 것은 결국 함께 일했던 사람들, 조직이 움직이는 방식, 그리고 그 안에서 배운 일의 태도였다.
조직 문화
토스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을 꼽으라면 단연 조직 문화다.
많은 동료들이 ‘Focus on Impact’, ‘Execution over Perfection’ 같은 코어 밸류를 진심으로 옳다고 믿고, 실제로 실천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은 항상 놀라웠다. 이 정도 규모의 조직에서 구성원들이 큰 틀에서 같은 생각을 하고 같은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은 결코 당연한 일이 아니다.
토스가 성공적인 회사가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 중 하나도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정도 수준의 문화가 만들어질 수 있었던 배경에는 대표 승건님의 영향이 크다고 느낀다. 승건님은 사내에서 유명한 공화국 덕후다. 회사의 공식 명칭인 비바리퍼블리카부터 ‘공화국 만세’라는 뜻이니, 그의 조직 철학이 조직 문화에 녹아든 건 자연스러운 일인 것 같다. Slack 공개 채널에서 임직원 누구나 사소한 불만이나 건의부터 꽤 민감한 문제 제기까지 비교적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었던 공론장 문화 역시, 그의 공화국 사랑이 조직 안에 자연스럽게 스며든 장면처럼 느껴졌다.
승건님과 직접 일한 시간은 길지 않았지만, 내가 마지막으로 일했던 커머스 도메인의 Commerce Pricing 팀 시절 몇 달간 우리 팀과 함께 스크럼을 할 정도로 밀접하게 업무를 하던 시기가 있었다. 승건님은 큰 회사의 대표로서 회사 안팎의 수많은 중대한 결정을 하고 있었음에도, 프로젝트의 진행 상황과 방향성을 빠르게 파악했다. 동시에 수시로 직접 서비스를 써보며 사소한 UX 버그까지 놓치지 않는 디테일도 챙겼다.
승건님과 함께 일하는 것은 분명 큰 압박감이 있었다. 하지만 그 압박감은 높은 기준, 확실한 의사결정 기준, 지금 팀이 바라봐야 할 단 하나의 목표에 대한 집요한 집중, 그리고 그 목표를 향해 미친 속도로 나아가는 실행력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 열기와 과정은 내가 알고 있던 스타트업의 본질이자, 내가 애정하던 토스의 정체성 그 자체였다.
최고의 복지는 동료
토스에는 “최고의 복지는 동료다”라는 말이 있다. 처음엔 조금 진부하게 들렸지만, 토스에서 일하며 그 의미를 다르게 이해하게 됐다. 좋은 동료란 함께 일하기 편한 사람을 넘어, 내가 더 높은 기준으로 일하도록 영감을 주는 사람이라는 것을 배웠다.
많은 동료들에게 영향을 받았지만, 그중에서도 서진님과 인혜님은 내게 조금 더 특별하게 남아 있다. 두 사람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내가 토스에 적응하고, 제품과 일을 바라보는 방식을 바꾸는 데 큰 영향을 주었다.
먼저 서진님은 내가 신규입사자였을 때 온보딩을 도와준 메이트였다. 지금은 토스에서 가장 어린 임원으로 Head of Frontend로 일하고 있지만, 당시에는 토스 Frontend 챕터 리드이자 내가 배정된 사일로의 직전 담당자였다. 이미 충분히 바쁜 사람이었지만, 내가 사일로의 맥락을 이해하고 적응할 수 있도록 필요한 순간마다 도움을 줬다.
입사 초기의 나는 토스의 속도와 일하는 방식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고 있었다. 무엇을 어디까지 주도해야 하는지, 언제 공유해야 하는지, 문제를 어떤 단위로 쪼개야 하는지 감이 전혀 없었다. 그런 시기에 서진님과 함께 일하며 그의 일하는 방식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었던 것은 내게 큰 행운이었다.
옆에서 서진님이 일하는 모습을 보면 시간의 밀도가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디버깅하는 모습을 볼 때 그 차이가 선명했다. 단순히 손이 빠르거나 기술을 많이 아는 사람이 아니라, 문제가 발생한 구조를 빠르게 파악하고, 지금 확인해야 할 가장 중요한 지점을 좁혀가며, 필요한 사람과 정보를 연결해 결과를 만들어냈다. 기술적 판단과 비즈니스적 판단이 분리되어 있지 않았고,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 전체가 하나의 흐름처럼 이어져 있었다.
돌아보면 서진님은 내게 단순히 온보딩을 도와준 사람이 아니라, 토스에서 좋은 FE가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 처음으로 구체적인 형태로 보여준 사람이었다. 탁월한 엔지니어는 코드를 빠르고 잘 쓰는 사람에 그치지 않는다. 비즈니스 목표를 이해하고, 문제의 본질을 빠르게 파악하고, 동료들과 함께 더 나은 결과를 만들어내는 사람이라는 것을 서진님을 통해 배웠다.
다음으로 인혜님은 내가 토스에서 가장 힘들었던 첫 3개월을 함께한 PO였다. 당시 나는 새로운 조직, 새로운 동료, 새로운 방식 안에서 계속 헛발질을 하고 있었다. 토스에서 요구하는 능동적인 업무 방식에 익숙하지 않았고, 내가 무엇을 모르는지도 잘 몰랐다.
인혜님은 그런 나를 가만두지 않았다. 1on1에서 직접적으로 내게 문제가 있다고 말했고, 수동적으로 일하는 방식을 바꿔야 한다고 피드백했다. 막히는 것이 있으면 혼자 붙잡고 있지 말고, 팀이 도울 수 있도록 더 빨리 공유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당시의 나에게 그 피드백은 꽤 아프게 다가왔다. 이미 잘 못하고 있다는 불안이 컸기 때문에, 문제가 있다는 말을 정면으로 받아들이는 일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돌아보면 그 피드백은 내게 꼭 필요했다. 인혜님은 나를 위로하기보다, 내가 이 조직에서 살아남고 성장하기 위해 무엇을 바꿔야 하는지 분명하게 알려준 사람이었다. 그 피드백을 받아들이고 일하는 방식을 바꾸는 과정에서, 나는 토스에서 조금씩 제 역할을 해낼 수 있게 됐다.
인혜님과 함께한 1년 반은 내게 큰 행운이었다. 토스에서도 많은 성과를 만들어낸 PO와 같은 목표를 바라보며 제품을 만들 수 있었던 시간은 정말 값진 경험이었다. 그 과정에서 나는 완벽한 서비스를 만드는 것보다 고객이 진짜 반응하는 것을 찾는 일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배웠다. 특히 인터넷 도메인에서 함께 0 to 1 하는 과정에서, 당시 1,600만이 넘는 거대한 MAU를 가진 앱 안에서도 작은 유저군을 대상으로 빠르게 실험하고, 적은 비용으로 시장을 검증하고, 이후 더 큰 임팩트로 이어질 가능성을 찾아가는 과정이 얼마나 중요한지 배울 수 있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80iLJr9bR2E
서진님에게서는 탁월한 메이커의 사고방식을 배웠고, 인혜님에게서는 고객 반응과 속도에 집착하는 태도를 배웠다. 그래서 내게 토스는 좋은 회사 이상이었다. 내가 어떤 환경에서 일할 때 즐겁게 성장할 수 있는지, 어떤 사람들과 일하고 싶은지, 어떤 방식으로 임팩트를 만들고 싶은지 알게 해준 곳이었다.
아무도 정답을 모른다
토스에서 일하며 깨달은 것 중 하나는, 가장 뛰어난 사람들도 정답을 미리 알고 움직이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업계 최고 수준의 PO들도 매주 다음에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했고, 지금 방향이 맞는지 계속 의심하고 검증했다. 승건님처럼 많은 경험을 가진 사람도 모든 시도의 결과를 처음부터 알 수는 없었다. 처음에는 회의적으로 보였던 액션이 실제로는 좋은 결과로 이어지는 경우가 있었고, 그 과정을 보며 아무리 뛰어난 재능과 경험에서 나온 판단이라도 결국 실행의 결과 앞에서 다시 검증되어야 한다는 것을 느꼈다.
결국 중요한 건 처음부터 정답을 맞히는 일이 아니었다. 작게라도 시도하고, 결과를 보고, 다시 판단하는 일이었다. 불안할수록 더 확실한 답을 찾고 싶어지지만, 그렇게 기다리다 보면 오히려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시간이 길어진다. 토스에서 제품을 만들며 배운 방식은 단순했다. 완벽한 확신보다 빠른 학습이 더 중요하다는 것. 시간이 지나고 보니, 이 방식은 제품뿐 아니라 커리어의 선택에도 꽤 비슷하게 적용되는 말이었다.
예전에는 팀 단위의 리소스가 필요했던 일들도, 이제는 AI와 도구들의 발전으로 개인이 훨씬 낮은 비용으로 시도하고 검증할 수 있게 됐다. 그래서 앞으로는 실행력 자체보다 무엇을 시도할지 판단하고, 그 결과를 학습으로 전환해 다시 실행하는 능력이 더 중요해질 거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 방식을 제품을 만들 때뿐만 아니라, 내 삶에도 직접 적용해보고 싶었다.
왜 떠나는가
그렇게 좋은 회사였기 때문에, 떠나는 결정은 쉽지 않았다. 열정 있고 똑똑한 동료들, 효율적인 배포를 위해 고도로 발달한 인프라, 혼자서는 해결하기 어려운 기술적 문제를 만났을 때 찾아갈 수 있는 플랫폼 팀. 이 모든 것은 내가 회사를 다닐 때는 쉽게 도움받을 수 있는 환경이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토스처럼 잘 갖춰진 환경이 아니어도 나는 지금처럼 일할 수 있을까. 좋은 동료와 좋은 시스템에 기대지 않고도, 스스로 문제를 정의하고 실행해서 좋은 성과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선뜻 그렇다고 대답하기 어려웠다. 그만큼 토스라는 환경이 내게 큰 힘이 되어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뛰어난 동료들과 함께 일하고, 더 나은 결과를 만들기 위해 고민하고, 목표를 향해 치열하게 움직였던 시간은 내게 정말 소중했다.
다만 그 소중함과 별개로, 내가 계속 이곳에 머무르는 것이 맞는지는 다른 문제였다. 카드, 모바일, 그로스, 쇼핑 등 여러 도메인을 경험했고, 조직적으로 중요한 일들도 했다. 하지만 그 일이 내가 앞으로도 계속 진심으로 몰입하고 싶은 일인지에 대해서는 확신이 없었다. 좋은 환경 안에서 바쁘게 일하는 것과, 내가 정말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변화가 필요했다. 더 잘하고 싶다고 말하면서도 실제로는 익숙한 환경 안에서 계속 미루고 있었던 것 같다. 생각만 반복하는 상태에서 벗어나 실제로 행동으로 옮겨야 했다. 토스의 좋은 조건들은 여전히 만족스러웠고, 쉽게 포기하고 싶지 않은 것들이었다. 하지만 바로 그 점 때문에 더 안주하게 됐다. 지금도 충분히 괜찮다는 생각에 기대다 보면, 나는 점점 더 큰 선택을 하지 못하는 사람이 될 것 같았다.
그래서 토스 밖에서 다시 나를 시험해보고 싶어졌다. 내가 정말로 몰입할 수 있는 일을 찾고, 좋은 환경 밖에서도 스스로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 확인해보고 싶었다.
다음 도전
나는 2026년 4월 20일부로 서울을 떠나 토론토에서의 삶을 시작했다.
캐나다행은 오래 고민한 끝에 내린 선택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해외취업에 대한 막연한 꿈이 있었고, 여자친구가 먼저 캐나다에서 개발자로 일하고 있었기 때문에 더 이상 멀리서만 서로의 삶을 바라보고 싶지 않은 마음도 있었다. 워킹홀리데이 비자는 현실적으로 시도해보기 좋은 선택지였다. 캐나다에서 커리어를 시작하면 북미 시장을 경험해볼 수 있다는 점도 매력적이었다. 좋은 기회가 온다면 미국이라는 더 큰 시장에 도전해볼 가능성도 열려 있다.
다만 캐나다로 간다는 결정이 곧바로 다음 회사를 찾겠다는 뜻은 아니다. 토스에서 좋은 동료들과 좋은 환경 속에서, 목표를 향해 빠르게 움직이는 경험을 했다. 내 기준으로는 한국에서 해볼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이고 재미있는 회사 생활에 가까웠다. 그래서 이번에는 그와 비슷한 회사를 다시 찾기보다, 직접 무언가를 만들고 시도하면서 조금 다른 방식으로 나를 실험해보고 싶었다.
캐나다라는 새로운 환경에서 직접 제품을 만들고, 회사 밖에서도 의미 있는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 확인해보고 싶다. 잘될 수도 있고, 생각보다 별다른 성과 없이 끝날 수도 있다. 결국 다시 취업을 선택하게 될 수도 있다. 그래도 지금은 해보는 쪽이 맞다고 생각한다. 더 오래 고민한다고 확신이 생길 문제는 아니고, 직접 부딪혀봐야 알 수 있는 일에 가깝기 때문이다.
예전에 서진님에게 『결심이 필요한 순간들』이라는 책을 추천받은 적이 있다. 당시엔 퇴사를 염두에 두고 읽은 책은 아니었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 안의 문장이 지금의 선택 앞에서 다시 떠올랐다.
답이 없는 문제의 결과가 좋지 못했다고 해도 그게 내 실수는 아니다. 이런 것들은 오히려 모험이라고 불러야 한다. ... 어차피 별로 정확하지도 않을 텐데 어느 모험이 최선일지 미리 알아내려고 낑낑대는 것보다는 차라리 그편이 낫다. ... 인생이 생각과 다르게 펼쳐진다면, 나라는 사람이 내가 생각했던 것과 다른 사람이 된다면, 변화하라.
인생이 다 지나가 버리는 것을 피할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은 '실수'에 대한 걱정을 그만두는 것이다. 어떻게 해도 더 잘할 방법이 없다면 그건 실수가 아니다. 그러니 '옳은 결정'이 무엇인지 알아내려고 쓰는 시간을 줄이라. 대신에 선택권을 늘릴 방법, 선택의 결과가 좋지 못했을 때 실망감에 대처할 방법을 고민하는데 더 많은 시간을 쓰라.
답이 없는 문제에는 다른 식의 접근법이 필요하다. 최선의 경로만 따지고 있을 게 아니라 애초에 어디로 갈 것인지를 고민해봐야 한다. 인생을 마치 최대한 앞을 내다보며 행복이나 웰빙을 극대화해야 하는 의사 결정 지점의 연속물인 것처럼 생각하지 말라.
『결심이 필요한 순간들』에서..
지금 내가 한 선택도 내게는 모험이다.
이제는 토스에서의 경험을 가지고, 새로운 시작을 해보려고 한다.
새로운 도전은 언제나 확신 속에서 시작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불안과 망설임 속에서 겨우 시작되는 경우가 더 많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실패라고 생각했던 선택의 의미를 다시 발견하게 되기도 한다. 혹시 이 글을 읽는 누군가도 비슷한 선택 앞에서 망설이고 있다면, 완벽한 확신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너무 오래 고민하지 않기를. 그리고 그 결과를 너무 빨리 실패로 단정하고 좌절하지 않기를 바란다.
마지막으로, 내가 가장 치열하게 일하고 가장 많이 성장할 수 있었던 시간을 만들어준 토스와 함께한 모든 동료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