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회고

작년 회고록을 적었던 게 얼마되지 않은 것 같은데, 벌써 한 해가 갔다. 돌이켜보면 올해는 지금까지의 인생에서 가장 다사다난했던 해였던 것 같다.
올해 초엔 일기를 열심히 적었다. 연초 버프를 받아서 3~4월까진 꾸준히 작성했지만, 중순이 되면서 조금씩 끊기다가 현재는 가끔 생각을 정리하거나 기록하고 싶을 때만 적곤 한다. 그래도 일기를 찬찬히 읽어보면 일기를 쓴 시기의 내가 어떤 일들을 겪었고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일기 속의 내 모습을 확실히 떠올릴 수 있다. 이 글은 2022년에 내가 겪었던 굵직한 사건들을 간략하게 추린 글이다. 회고보단 기록에 좀 더 가까운 글이 된 것 같다. 올해는 여러모로 참 인상 깊은 사건들이 많아서 이 기억을 잘 간직했으면 좋겠다.
커리어의 변화
이직
올해 초에서 중순, 내가 이직하기 전후에 내가 가장 많이 느꼈던 감정은 불안함이었다. 작년 말, 더 좋은 환경에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올해 초부터 이직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첫 이직이었던 만큼 나는 모르는 것도 많았고 확신도 없었다. 새로운 도전에 대한 두려움은 더욱 컸다. 첫 직장에서의 커리어를 담은 내 이력서는 내게 2년이라는 시간이 무색할 만큼 초라해 보였다. 몇 번의 수정 끝에 완성한 이력서를 봤을 때 서류 전형조차 통과할 수 있을지 확신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내게 이직해야겠다는 확신을 준 사건을 겪고, 두려움은 개뿔 그 감정에 붙잡혀 있을 여유 따위는 없었고, 더 좋은 곳으로 가려면 뭐라도 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있는 힘껏 부딪혔다. 그렇게 여러 관문들을 지나서 제일 원했던 토스로 오게 됐다.
끝이 아닌 시작.
토스에 합격한 이후 나는 모든 것이 잘 끝났다고 여겼다. 물론 새로운 조직에 적응하는 것이 걱정되긴 했지만, 입사하기 전까지 내가 어떤 팀에서 어떤 방식으로 일하게 될지 전혀 몰랐기 때문에 직접 겪어보고 판단해야 했다. 그리고 그렇게 어렵지 않을거라고 생각했지만, 생각보다 적응은 쉽지 않았다. 크게 2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째, 충분하지 않았던 온보딩. 어찌됐던 스타트업이다 보니까 리소스는 항상 부족하다. 따라서 신규입사자의 온보딩에 많은 리소스를 투입할 여유가 없다. 그래서 충분히 온보딩되지 않은 상태로 업무를 시작하게 되어 어려움을 많이 겪었다.
둘, 생각과 달랐던 사일로의 업무 방식. 토스의 모든 사일로는직군별 구성원이 한 명씩 이루어져 있다. 구성원들은 모두 조직내에서 자신의 분야를 가장 잘 알고 잘하는 프로다. 그래서 구성원 한명 한명이 자신의 분야에 대해 완전한 권한과 책임을 지고 있다. 사실, 이 점이 토스가 특별한 이유이기도 하고, 오고 싶었던 가장 큰 이유였다. 하지만 실제로 이걸 겪어보니 독립적인 프로로서 자기 업무의 책임을 온전히 짊어진다는 것은 내 생각보다 더 무거운 일이었다.
입사 2일 차에 첫 실제 유저들이 사용하는 라이브 앱 배포를 했고, 첫 주에 했던 배포 중에서는 정규표현식 호환성 이슈로 ios 앱에서 내가 배포한 서비스의 CTA 버튼이 보이지 않는 버그가 생기기도 했다.
이런 경험들이 쌓이면서 나는 자신감이 생기기보다 점점 더 불안해졌다. 분명히 익숙하지 않은 환경에서 개발하면서 실수할 수 있지만, 개발환경과 실행환경에 대한 낮은 이해도와 짧은 배포 주기는 이런 실수가 더 반복되게 했다. 실수의 반복은 점점 더 실수하지 말아야 한다는 강박을 만들었고, 이 강박은 브레이크가 되어 속도는 개선되지 않았다. 이건 다시 퍼포먼스에 대한 심리적 부담으로 이어졌고 악순환의 고리가 만들어졌다.
내 배포 속도가 개선되지 않자 사일로 전체의 업무 속도가 개선되지 않은 채로 정체됐다. 일을 처리하는 속도가 느리니까 처리되지 않은 일들은 점점 더 많이 쌓이게 됐다. 사일로 위클리에서도 사일로 동료에게 속도 개선이 시급하다는 얘기를 듣게 됐다. 나 스스로도 내 자신이 너무 답답했기 때문에 동료에게 이런 피드백을 듣는 내 상황을 개선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동시에 처음 겪어보는 직접적인 피드백은 내게 큰 상처가 됐다. 이즈음의 내가 썼던 일기에서 내가 느꼈던 불안함을 엿볼 수 있다.
당연하지만 아직 나에게는 이 두 가지를 한 번에 잘할 능력이 없다. 그렇지만, 팀원들이 나에게서 잘하는 것을 바랄 때 내 능력이 사실은 보잘 것 없다는 게 들통날까 두렵다.
이직 2주 차 일기에서..
이직을 하고 지금 사일로에 오고 나서 가장 많이 느낀 감정은 조급함, 불안함, 스트레스, 긴장 등등의 감정들이다.
이직 3주 차 일기에서..
부정적인 감정 속으로 침잠하는 동시에 그 늪에서 죽도록 빠져나오고 싶었다. 하지만 나조차 나를 신뢰하지 못했기 때문에 스스로 그 수렁에서 벗어나기 어려웠다.
반환점
내가 부정의 수렁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가장 큰 동기는 같은 FE 챕터의 시니어 FE 개발자 분과의 1 on 1 커피챗 덕분이었다. 이전에 이런 형태의 커피챗을 경험해보지 않아서 이게 이렇게 큰 도움이 될 줄은 전혀 몰랐다. 하지만 겪어보니, 새롭게 합류한 신규 입사자의 입장에선 이렇게 먼저 조직에 합류한 개발자와 내가 겪고 있는 문제에 대해 터놓고 얘기하고 함께 해결책을 도출해나갈 수 있는 기회 자체가 구원이었다.
스스로 내 상황을 돌아볼 때에는 외면했던 내 현재 모습과 상황을 함께 얘기하면서 직시할 수 있었다. 내 가장 큰 문제는 새로 합류한 신규입사자로 바뀐 내 상황을 인정하지 못한 것이었다. 전 직장에선 2년간 쌓아온 지식과 경험으로 스스로 판단하고 그대로 수행할 수 있었다. 나는 더 이상 그때의 내가 아니었지만, 계속해서 그때의 나처럼 행동하려고 했다. 객관적인 판단이 어려워서 뭐든 일단 할 수 있다고 말했고, 판단이 잘못됐음을 뒤늦게 깨닫고 나서도 내가 틀렸음을 알리지 못해 나 스스로를 다그치며 혼자서 모든 것을 해결하려 했다.
이제 문제를 정확히 알았으니 해결할 차례였다.
성장
내 상황을 정확히 직시하고 문제를 파악한 이후 점차 모든 것이 다 나아지기 시작했다. 내가 지금 당장 구현하기 어려운 것이 있다면 그 부분을 사일로에 알리고, 다른 중요한 것을 우선 개발했다. 당장 구현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면 뒤로 미뤘다. 그렇게 우선순위를 나누어 개발하니 자연스럽게 배포 주기는 짧아졌고, 사일로의 업무 속도는 제자리를 찾게 됐다.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새로운 방법으로 일한다는 것은 당연히 낯설고 우여곡절을 많이 겪을 수밖에 없다. 성과를 내야 한다는 부담감에 나를 더 극한으로 몰아넣고 더 비난하고 혐오하다가 견딜 수 없어 도망치기도 했다. 나를 그곳에서 구출시켜준 것은 현실에 대한 자각이었다.
…
처음엔 어렵고 힘든 게 당연하다. 내가 바라보는 목표가 높기에 나에게 기대하는 게 큰 것은 당연하다. 다만, 이 레이스는 마라톤이라는 것을 기억하자. 결승 지점까지 한참 남았다. 내일 당장 갑자기 뛰어난 사람이 될 수는 없으니까 차근차근 나의 길을 걸어가자.이직 2달 차 일기에서..
토스에서는 완전한 기능이나 완벽한 기능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사용자에게 전달하는 가치가 제일 중요하다. 기능은 있다가도 유저의 니즈가 없다면 한순간에 없어질 수도 있으니 최대한 비용을 아껴서 가설을 검증할 수 있는 MVP를 만들고 그걸 빠르게 반복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는 걸 이해하게 됐다. 수많은 일들 사이에서 제일 중요한 일이 무엇인지 구분하고 그걸 빠르게 수행하는 마인드 셋을 실천하면서 일하는 속도가 눈에 띄게 개선됐다.
오늘 있었던 사일로 먼슬리 리뷰에서 동료들에게 긍정적인 피드백을 받았다. 그리고 나 또한 나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
내 셀프리뷰를 이렇게 긍정적인 바이브로 웃으면서 많이 좋아졌다고 말할 수 있을 줄이야.
정말 놀라운 일이 아닐 수가 없다.
내가 이렇게 발전할 수 있었던 이유는 나를 믿고 기다려주고 계속해서 피드백해준 사일로 동료들과 내가 잘 랜딩할 수 있도록 서포트해준 XX님(시니어 FE 개발자님) 덕분이다. 앞으로도 화이팅하자.이직 4달 차 일기에서…
이렇게 일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단순히 기능을 빠르게 개발하는 역할이 아니라 비즈니스 임팩트와 유저에게 전달하는 가치를 생각하는 메이커로서 일하게 됐다.
Recap
정말 많은 우여곡절을 지나 이제 어느 정도 안정기에 접어들었다. 여러 사건을 겪으면서 내면이 더 단단해지고 더 ‘나’다워졌다고 느낀다.
이렇게 올해를 돌아보니 ‘노르웨이의 숲’에서 등장인물 나가사와 선배가 떠나면서 주인공 와타나베에게 ‘자신을 동정하지 말라’는 충고하는 대목이 떠오른다. 이걸 읽었던 시점에는 이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 이해하기 어려웠는데 이제는 이 말의 의미를 조금은 알 것 같다.
나 자신을 동정하지 말라는 말의 의미는 내 처지를 불쌍히 여기지 말고 자신을 믿고 묵묵히 앞으로 나아가라는 뜻이 아닐까?
일 바깥
유럽 여행
추가로 이직이 결정되고 퇴사하기 이전에 남아있는 연차를 다 쓰고 유럽 여행을 다녀왔었는데, 준비과정이 되게 고통스러웠다. 이직이 확정된 이후에 여행 일정이 되게 급하게 잡혀서 준비 기간은 2주 정도로 짧았는데 이때 계획한 여행 기간은 3주여서 유럽 여행을 아무것도 몰랐던 나에겐 준비하기 정말 빠듯한 시간이었다. 두려움에 일정을 줄일까 고민도 했었지만, 언제 다시 유럽에 가보겠냐 하고 싶은 것 다 하라는 누나의 조언에 따라 21일 동안 유럽 5개국을 다녀오기로 결정했다. 여유 기간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비행기 티켓은 결심한 날 바로 결제했고, 매일 매일 자료 조사와 여행 계획을 짜고 예약하다가 새벽 3~4시에 잠들었다.
돌아보면 준비기간은 정말 힘들고 스트레스받았지만, 여행은 너무 즐겁고 재밌었다. 스스로에게 큰 도전이었고, 보상이었다. 다시 또 언제 이렇게 긴 기간 동안 여행을 다녀올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 여행은 나에게 잊지 못할 추억이 됐다.
취미
올해는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꾸준히 하려고 노력했다. (aka. 취미 부자) 좋아하는 가수들의 공연에 가기도 하고, 건강해지기 위해 헬스도 하고 있고, 드럼도 계속 배우고 있다. 하면서 느끼는 건데, 이렇게 꾸준히 관심을 갖고 애정을 쏟는 게 정말 힘이 많이 든다는 것이다. 그래도 이렇게 삶에서 이런 즐거움을 얻을 수 있다는 건 정말 감사한 일이다.
마무리
나의 올해를 두 단어로 요약하자면 변화와 믿음이다. 정말 많은 변화가 있었고, 그 과정에서 나에 대한 믿음을 잃고 쓰러지기도 했다. 하지만 다시 일어섰고, 한 발짝씩 나아가다 보니 결국 다시 내 자리를 찾았다.
앞으로도 이런 변화가 계속 있겠지만, 두려워하지 말고 나를 믿고 나아가도록 하자.



